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르샤바 전투(1920년) (문단 편집) == 배경 == || [[파일:PBW_June_1920.png|width=100%]] || [[파일:PBW_August_1920.png|width=100%]] || ||<:> '''1920년 6월 전선''' ||<:> '''1920년 8월 전선''' || 1920년 여름, 폴란드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4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동맹을 맺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키이우 공세(1920년)|키예프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폴란드군은 현지인들로부터 기대했던 환영을 받지 못했고[* 중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는데, 이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지주들은 정교도인 현지 농노들을 학대하고 가톨릭을 강요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래서 폴란드가 동맹자라고 손을 내밀어도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를 기본적으로 불신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현지는 이미 기나긴 전쟁에 지쳐서 폴란드를 도울 힘도 없었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키이우의 주인은 16번이나 바뀌었다.], 얼마 안가 [[세묜 부됸니]]가 지휘하는 제1기병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6월 초 키이우에서 철수했다. 키이우에서의 패배를 시작으로 폴란드군의 모든 전선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붉은 군대는 남쪽의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북쪽의 벨라루스에서도 몰아붙였다. [[미하일 투하쳅스키]]의 서부전선군은 벨라루스의 베레지나강에서 폴란드군에 전면적인 공세를 펼쳐 퇴각을 강요했다. 7월 28일 서부전선군은 폴란드 북부의 [[비아위스토크]]까지 진격하였다. 1920년 8월 초 볼셰비키의 서부전선군은 벨라루스를 완전히 점령하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까지 깊숙히 진격했다. 남부 전선을 맡은 남서전선군의 진격은 상대적으로 더뎠지만 여기도 [[갈리치아]]의 중심도시 [[르비우]] 인근까지 진격했다. 국외의 관찰자들은 폴란드의 멸망이 임박했다고 보았고, 그것은 폴란드 지도부도 다르지 않아서 볼셰비키와 어떻게든 협상해서 진격을 멈추기 위해 애를 썼다. 7월 24일 폴란드의 빈첸티 비토스(Wincenty Witos) 내각은 소비에트 러시아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평화협상을 시도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8월 10일 영국에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레프 카메네프는 명목상 폴란드의 독립과 민족자결을 보장하긴 했지만, 요구조건의 내용은 사실상 항복 내지는 폴란드의 무장해제에 가까운 것이었다.[* [[베르사유 조약#s-6|폴란드군의 병력을 5만으로 제한하고]], 군수산업을 해체하며, 이 병력을 무장시키는 데 필요한 무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볼셰비키에게 양도하도록 했다. 또한 폴란드에 새로운 병력이나 무기 반입을 금지하고, 비아위스토크와 [[발트 해]]를 잇는 [[철도]]를 러시아가 교역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폴란드의 동부 국경은 당연히 커즌 라인에 맞게 조정되며, 폴란드군은 동부 국경으로부터 최소 50베르스타(약 53km) 떨어져야 했다. 무엇보다도 '민병대'를 조직하도록 했는데, 이는 폴란드 노동자들을 무장시켜서 붉은 군대에 호응하게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은 폴란드 정부는 사절단을 파견, 14일 이들은 투하쳅스키가 있는 민스크의 사령부를 방문했다. 폴란드와 국경분쟁을 빚던 주변국은 이 기회에 아예 폴란드를 멸망시키기 위해 폴란드로 병력과 물자의 반입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은 [[단치히 자유시]]의 [[사보타주]]를 사주하여 폴란드의 물자반입을 방해했으며, 폴란드로 향하는 물자가 자국을 경유하는 것을 거부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도 폴란드로 향하는 물자의 반입을 막아버렸다. 그나마 폴란드와 [[혈맹]]에 가깝던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헝가리]]가 3만의 기병군단을 파병하려 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중립을 선언하여 그들의 이동을 막았다. 8월 초 폴란드는 이렇게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볼셰비키와 전쟁하여 획득한 영역은 거의 전부 잃어버렸고, 주변국은 볼셰비키의 손을 빌어 폴란드를 아예 멸망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볼셰비키는 폴란드를 식물국가로 전락시킬 요구조건을 내밀었고, 만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속 전쟁하여 멸망시키려고 했다. 8월 12일, 바르샤바 전투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